2014년 8월 25일,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르는 급류에 몸을 맡긴 지 몇 주 일상

1.
2-3주 전 시작했던 일이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대한민국의 모든 계약직이 이러나 싶은데, 처음에 10만큼의 업무를 한다고 계약해놓고 시간이 지날수록 20, 30만큼의 일을 아무렇지 않게 맡겨놓는다. 학과 사무실로 잡 오퍼가 들어왔던 거라, 학생 사정을 봐준다고 주4근무를 흔쾌히 허락했다. 나는 이 말을 믿고 일주일에 하루를 학교 일정으로 짰다. 그런데 그 하루조차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고 끊임없이 연락을 했다. 이렇게 처음의 조건이 급속도로 어그러져 갈수록, 수면 시간이 대폭 줄어들어 삶이 팍팍해졌다. 지금 이런 상황이 누구의 잘못인가, 어디에 원인이 있는가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다만, 지금 상태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2.
누군가가 그랬다. 상견례 식사 때 흔히 주문하는 코스 요리에서 본식과 후식 사이에 우주를 느낄 수 있다고. 극도의 어색함과 뻘쭘함으로 인해 모두들 영겁의 시간을 경험한다고. 그도 그럴 것이, 살면서 한 번도 본 적 없을 사람들이 조만간에 가장 친근한 가족이 되어야 한다는 조건 자체가 웬만한 사람들을 주춤하게 만든다.

2-1.
지난 주 일요일 한식집에서 상견례를 했다. 다행히 연배가 비슷하신 두 부모님들께서는 어색해하지 않았다. 게다가 두 아버지는 술을 좋아하지만, 부인으로부터 눈치를 보면서 마신다는 공감대를 진즉 형성하여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드셨다. 이미 웬만한 결정사항들은 자식들이 결정해놓고 서로의 부모를 설득해왔던 지라, 상견례에서 부딪힐 일들은 없었다. 가장 치열했던 문제는, 이미 4병이나 마신 막걸리를 한 병 더 시키느냐, 그냥 가느냐의 문제였다. 물론 어머니들의 의견에 따라, 식당 브레이크 타임이 촉박하게 다가오고 있으므로 양가는 서로 인사하며 헤어졌다.

2-2.
상견례에서 막상 결정한 건 없는데, 일단 이 자리가 끝나고 나니 결혼 준비 과정의 한 단계를 해치운 느낌이었다. 우주까지 경험한 건 아니지만, 뭔가 살면서 쉽게 겪을 수 없는 일을 거친 느낌이었다. 별달리 한 게 없는데도 지쳐버렸다. 오후 3시에 나오면서 이미 화장은 번지고 머리는 부스스해졌다.


3.
상견례 다음날 월요일, 학교에서 시험을 보았다. 그 동안 예상치 못한 일들에 부쳐서 힘들었는데, 다행히 시험문제만큼은 내가 읽은 범위에서 나왔다. 시험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튀어나온 문제가 없어 안도했다. 이런 사소한 일로 마음을 쓸어내릴 만큼 요 몇 주간 내 생활은 요지경스럽다. 이 무슨 진력나는 카오스인가.

덧글

  • 이난 2014/08/25 23:23 #

    그야말로 카오스의 나날들을 살고 계시는군요...
    그래도 큰 산 하나 넘으셨네요. 저나 여자친구가 서로의 부모님은 이미 여러번 뵈었지만, 상견례는 여전히 상상만으로도 얼어붙는 기분입니다. 그렇게 하나 하나 넘으시다 보면 그 날도 어느새 눈 앞에 와 있을 것 같습니다. 그전까지 무사히 완주하시길!
  • kimji 2014/08/28 07:27 #

    그렇죠ㅠ 저도 상견례 전에 상대의 부모님을 여러 번 뵈었는데, 그 땐 그렇게 어렵지 않았어요. 그런데 '상견례'라는 이름의 무게를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나눠 지고 있는 느낌이랄까, 정말 어찌할 바를 몰랐어요 ㅋㅋㅋ 하나 하나 넘어갈 것이 정말 많네요. 응원 감사합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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